#어거스틴 #모세 #떨기나무 #출애굽기

설교 제목: 설교 제6번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나신 주님에 대하여

일시: 서기 400년 이후


본문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성도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1. 거룩한 본문들이 낭독되는 동안, 나는 우리에게 봉독된 첫 번째 본문에 기록된 내용에 집중했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이 본문에 대해 내게 깨닫게 해주신 바를 성도 여러분과 짧게 나누고자 합니다. 이는 여러분이 이러한 신성한 신비들을 육적으로만 받아들여 유익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해를 입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신성한 텍스트에서 우리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그분의 본질 그대로를 나타내 보이지 않으십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8) 하나님께서 거룩한 사람들의 신체적인 눈에 나타나고자 하실 때, 그분은 자신의 본체로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이 지각할 수 있는 감각적인 피조물, 즉 귀로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나 눈으로 볼 수 있는 불, 혹은 하나님의 위격을 대신하여 가시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를 통해 나타나셨습니다.

형제들아,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방식도 바로 그런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천지를 만드시고 우주를 통치하시며, 천사들이 순결한 마음으로 그 아름다움을 관상하며 항상 머무는 저 지고의 탁월함은, 우리의 가시적인 눈에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감각적인 피조물을 통하지 않고서는 인간의 죽을 눈에 나타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지혜(그리스도)조차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을 입으심으로써만 인간의 눈에 나타나셨던 것과 같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2.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눈에 보이기 위해 육신을 입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눈에 보이기 위해 항상 가시적인 피조물의 형상을 빌려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사도행전에서 천사가 떨기나무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났다고 아주 명확하게 진술된 것을 봅니다(행 7:30). 이 성경은 참되고 저 성경은 거짓입니까? 아니면 저것은 참되고 이것은 거짓입니까?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고 진정으로 믿는다면 둘 다 참됩니다.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둘 다 참되다면, 여기서는 어떻게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하고 저기서는 어떻게 천사가 나타났다고 말합니까? 그것은 사도행전에서 역사하셨던 성령께서 이 본문에 기록된 하나님이 나타나신 방식이 어떠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천사가 나타났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 명확한 진술이 이 난해한 구절에 대한 설명이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본체 그대로 나타나셨다고 오해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창조된 천사를 통해 나타나셨다는 설명이 그 텍스트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천사가 나타났을 때 왜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다", "모세가 그곳에 가까이 가자 주께서 말씀하셨다" (출 3:4, 14 참조)라고 하는지 의아해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성전 자체인 천사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천사 안에 거하시는 분을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사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거하며 말씀하시기로 하셔서 선지자가 말할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라고 한다면, 하물며 천사를 통해서는 얼마나 더 그러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셨다"라고 할 때 이사야는 누구였습니까?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부모에게서 태어난 육신을 가진 인간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도 그가 말할 때 우리는 그의 설교를 읽으며 무엇이라 합니까? "하나님이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고 합니다. 그것이 이사야의 말이라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습니까? 이사야를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천사가 말할 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사를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유대인의 상징인 떨기나무

3. 이제 그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다른 지점에 주목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셨는데, 그 떨기나무가 타버리지도 않고 불이 붙지도 않았으며, 그분은 불의 형상으로 나타나셨으나 떨기나무를 태우지 않으셨다는 것이 무엇을 상징합니까? 가시가 있는데도 이 떨기나무가 어떤 선한 것을 상징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가시는 죄인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떨기나무는 가시로 가득하고 죄로 가득한 유대인 백성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주권적 위엄이 그 백성 가운데 나타나셨을 때, 마치 가시가 이 불에 타버리지 않은 것처럼 그들의 죄도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불이 가시를 소멸시켰다면,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전해진 주님의 말씀이 그들의 죄를 소멸시키고 율법이 그들의 불법을 끝냈음을 의미했을 것입니다. 떨기나무의 불은 유대인들 사이에 있는 율법과 같고, 떨기나무의 가시는 유대인들의 죄와 같습니다. 불이 이 가시들을 재로 만들지 않은 것처럼, 그곳에서 율법은 죄를 소멸시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계시하십니다

4. 이제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시간 관계상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 3:14)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주신 답변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주님이신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분은 "나의 이름은 '그는-계시다(He-is)'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나는 영원히 거하며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변하는 것들은 영원하지 않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하는 것은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변하는 모든 것은 과거에 무엇이었고 미래에 무엇이 될 것이지만, 가변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있다(is)"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불변성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라는 구절을 통해 암시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의 두 번째 이름

5. 그렇다면 나중에 그분이 자신에게 다른 이름을 주신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경은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출 3:15)라고 말합니다. 저기서는 내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이름으로 불리더니, 보십시오, 여기서는 또 다른 이름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불립니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참으로 불변하시지만, 동시에 자비로 모든 일을 행하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친히 가변적인 육신을 입으셔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본질은 그대로 유지하신 채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이처럼 '스스로 계신 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을 입으셨기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진실로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표징들

6.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표징들을 보십시오. 모세가 "백성들이 하나님이 당신을 보내지 않았다고 하면 내가 당신이 나를 보냈다는 것을 어떤 표징으로 보여주어야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주신 표징들입니다. 하나님은 "네 손에 있는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지팡이를 던지자 뱀이 되었고 모세는 경악했습니다. 주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그 꼬리를 잡으라." 그러자 다시 원래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출 4:1-5).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것을 땅에 던지라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또 가라사대 이는 그들로 그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함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은 그에게 또 다른 표징을 주셨습니다. "네 손을 품에 넣으라." 그가 손을 넣었다가 꺼내자 눈같이 하얗게, 즉 나병이 생겼습니다. 사람 피부의 흰색은 병든 상태입니다. "다시 네 손을 품에 넣으라." 그가 다시 넣었다 꺼내자 원래의 피부색으로 돌아왔습니다(출 4:6-7). 하나님은 세 번째 표징을 주셨습니다. "나일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그가 물을 떠서 붓자 그것이 피로 변했습니다. "이 표징들을 통해 백성들이 너의 말을 들을 것이다. 만약 첫 번째 표징을 믿지 않으면 두 번째나 세 번째 표징은 믿으리라" (출 4:8-9 참조)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 손에 문둥병이 발하여 눈 같이 흰지라
가라사대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손이 여상하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이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둘째 이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하수를 조금 취하여다가 육지에 부으라 네가 취한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되리라

뱀의 표징

7. 주님께서 힘주시는 대로 이 표징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 보겠습니다. 지팡이는 '왕국'을 상징하고, 뱀은 '죽을 운명(mortality)'을 상징합니다. 인간은 뱀으로 인해 죽음을 마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죽음을 친히 짊어지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팡이가 땅에 떨어졌을 때 뱀의 형상이 된 것은, 하나님의 왕국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에 내려오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분은 죽을 운명을 입으셨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알다시피, 저 교만하고 목이 곧은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했을 때 그들은 불뱀들에게 물려 죽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로 해결책을 마련하셨는데, 그것은 당시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방편일 뿐만 아니라 장차 올 지혜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광야 한가운데 장대 위에 놋뱀을 매달고 백성들에게 말하라. 뱀에게 물린 자는 누구든지 이 뱀을 쳐다보라." 사람들이 물렸을 때 그 뱀을 쳐다보고 치유되었습니다(민 21:8-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주님께서는 복음서에서 이것이 표징임을 확증하십니다. 니고데모와 대화하실 때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4-15) 즉, 죄의 뱀에게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만 하면 죄 사함의 치유를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형제들아, 주님께서 친히 입으신 그 죽을 운명을 교회는 하늘에 계신 머리 되신 그분의 몸으로서 계속해서 경험해야 합니다. 교회는 뱀의 유혹을 통해 부과된 죽을 운명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첫 사람의 죄로 인해 죽음을 빚지고 있으나, 나중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생명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언제 생명에 도달하고 왕국으로 돌아갑니까? 세상의 끝에서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꼬리(끝을 의미함)를 잡으심으로써 지팡이를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미래의 백성에 대한 표징

8. 저 손은 무엇입니까? 그 손은 분명히 '백성'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품은 무엇을 뜻합니까? 모세의 품은 하나님의 은밀한 처소(지성소)를 상징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은밀한 처소에 머무는 동안 그는 안전하고 온전하며 건강한 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밀한 처소에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낙원에서 걸어 나갔으며 병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손은 하얗게 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다시 품으로 돌아왔고 원래의 색을 되찾았습니다.

저 물은 무엇입니까? 그 물은 '지혜'를 의미합니다. 물은 종종 지혜를 표상하는 데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그렇다면 땅 위에서 피로 변한 이 지혜의 물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러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처럼 이 모든 것들은 장차 올 백성에 대한 표징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상징들입니다. 구약 성경의 책들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도 우리가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비난하는 자들이 아니라 구하는 자들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열리도록 간구하고 찾고 두드립시다. 옛적의 사람들에게는 장차 올 거룩한 신비들이 예고되었으나, 우리는 그것들이 교회 안에 실재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원문 or 출처

Saint Augustine, Sermons 1–19 on the Old Testament, ed. John E. Rotelle, trans. Edmund Hill, vol. I, The Works of Saint Augustine: A Translation for the 21st Century (Hyde Park, NY: New City Press, 1992), 72–76쪽.